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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존슨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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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워드 존슨은 1960년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에서 태어난 전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3루수와 유격수로 활약했다. 1979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입단하여 1984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1985년 뉴욕 메츠로 이적하여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존슨은 통산 3번의 30-30 클럽 가입과 1991년 내셔널 리그 홈런왕, 타점왕을 차지했으며, 2번의 실버 슬러거상과 2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은퇴 후에는 코치로 활동하며, 2007년에는 뉴욕 메츠의 1루 코치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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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존슨 (야구 선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07년 뉴욕 메츠의 존슨
존슨 (2007년 뉴욕 메츠 코치 시절)
이름하워드 존슨
영어 이름Howard Johnson
출생일1960년 11월 29일
출생지미국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
포지션3루수
타석양타
송구우투
선수 경력
프로 입단 연도1979년
드래프트 순위1979년 1월 2차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2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지명
데뷔 리그MLB
데뷔1982년 4월 14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최종 리그MLB
최종1995년 10월 1일, 시카고 컵스
선수 경력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82-1984)
뉴욕 메츠 (1985-1993)
콜로라도 로키스 (1994)
시카고 컵스 (1995)
수상 경력
올스타2회 (1989, 1991)
월드 시리즈 우승2회 (1984, 1986)
실버 슬러거 상2회 (1989, 1991)
내셔널 리그 홈런왕1991년
내셔널 리그 타점왕1991년
명예의 전당뉴욕 메츠 명예의 전당
코치 경력
코치 경력뉴욕 메츠 (2007-2010)
시애틀 매리너스 (2014-2015)
통산 기록 (MLB)
타율0.249
홈런228
타점760

2. 어린 시절

하워드 존슨은 1960년 11월 29일,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에서 빌과 수 존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세 자녀 중 장남이었으며[2], 할아버지 레이먼드 하워드 존슨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의 가족은 매주 일요일 교회에 간 후 하워드 존슨(Howard Johnson's)에 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점심값을 한 번도 내지 않았다.[1]

빌 존슨은 하워드를 리틀 리그 야구에서 코치했고, 그가 세 살이나 네 살 때 스위치 히터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2]

존슨은 클리어워터 고등학교에 다녔고 야구팀에서 뛰었다. 3학년 때 .375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4학년 때는 .275로 하락했다. 투수로서 존슨은 4학년 때 91 이닝 동안 0.91의 평균자책점과 11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2] 뉴욕 양키스는 존슨을 1978년 MLB 드래프트 23라운드에서 지명했지만, 계약금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존슨은 세인트피터스버그 칼리지(St. Petersburg Junior College)에 진학하여 투수와 포지션 플레이어로 대학 야구를 했다.[2][3] 17세의 나이로 1978년 MLB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에 23번째 라운드에서 드래프트되었으나 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후 1979년 1월 MLB 2차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의해 첫 라운드에서 12위에 드래프트되었다.

3. 야구 경력

하워드 존슨은 1982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지만, 타격 부진으로 마이너 리그를 오갔다. 1984년 타이거스에 복귀하여 톰 브루켄스와 플래툰으로 기용되었고, 팀은 1984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1984년 시즌 후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 존슨은 레이 나이트, 케빈 미첼 등과 3루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며 유격수로도 출전했다. 1986년에는 부상으로 88경기에 출전했지만 10홈런을 기록했고, 팀은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며 두 번째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1987년, 레이 나이트가 팀을 떠나면서 주전 3루수가 된 존슨은 36홈런, 32도루를 기록하며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이는 스위치 타자 최초의 기록이었으며, 팀 동료 대릴 스트로베리와 함께 같은 시즌에 30-30을 달성한 유일한 팀 동료가 되었다.

1988년에는 타율이 .230으로 부진했지만, 2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1989년에는 그레그 제프리스가 2루수로 이동하면서 3루수 자리를 지켰고, 3번 타순을 맡아 36홈런, 41도루, 101타점, 104득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바비 본즈, 윌리 메이스와 함께 30-30 클럽에 두 번 이상 가입한 선수가 되었다.

1990년에는 타율 .244, 90타점, 37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시즌 막판에는 유격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메츠의 공격 리더로 활약하며 내셔널 리그 홈런왕(38개)과 타점왕(117개)을 차지했고, 세 번째로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이후 존슨은 1992년과 1993년 부상과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994년 콜로라도 로키스, 1995년 시카고 컵스에서 뛰었지만,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35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마이너 리그 팀 코치와 감독, 메이저 리그 팀 코치를 역임했다. 2011년에는 아들 글렌과 함께 독립 야구 리그인 캔-암 리그에서 두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3년부터는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과 메이저 리그 팀에서 타격 코치를 맡았다.

3. 1. 1980년 ~ 1983년: 마이너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입단한 존슨은 곧바로 내야수로 전향했다. AA영어 버밍햄 배런스에서 뛰던 1981년에는 2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2]

1982년 4월 14일에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나, 타율 .188로 부진하여 5월에는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었다. 8월 중순에 메이저 리그로 복귀하여 9월에는 .405의 타율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83년에는 메이저 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타격 부진으로 5월에 다시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었고, 그 해에는 다시 메이저 리그로 복귀하지 못했다.

3. 2. 1984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첫 챔피언십

1984년 존슨은 타이거스에 복귀하여 톰 브루켄스와 플래툰으로 기용되었다. 존슨은 비교적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후반기에는 부진했다.[4] 그는 정규 시즌을 .248 타율, 12개의 홈런, 50 타점(RBI), 355 타수로 마쳤다.[5] 타이거스는 시즌 내내 지구 1위를 유지하며 1984년 MLB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감독 스파키 앤더슨이 더 경험 많은 선수를 선호하여 존슨은 1984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6] 톰 브루켄스, 마티 카스티요, 다렐 에반스가 3루수 자리를 분담했다.[7] 1984년 월드 시리즈에서 타이거스는 존슨을 한 번 대타로 기용했으며, 그는 2루수 앨런 위긴스의 실책으로 출루했고, 타이거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꺾고 월드 챔피언이 되었다.[8]

3. 3. 1985년 ~ 1986년: 뉴욕 메츠와 2번째 챔피언십

1984년 시즌 후, 월트 테렐과의 트레이드로 뉴욕 메츠로 이적했다.[5]

1985년에는 레이 나이트와 3루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유격수 라파엘 산타나의 타격 부진으로 인해 유격수로 출전하는 기회도 많았다.[10]

1986년에는 케빈 미첼과 3루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나이트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3루에 정착했고, 존슨은 유격수를 지키는 기회가 많아졌다. 부상으로 88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10홈런을 기록했다.

1986년 7월 22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는 연장 10회 난투극 이후, 14회에 3점 홈런을 쳐내며 승리를 이끌었다.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고 우승하며, 존슨은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존슨 (1986년)

3. 4. 1987년: 발진 시즌

1986년 월드 시리즈 이후 레이 나이트가 자유 계약 선수로 팀을 떠나면서, 존슨은 3루수 자리를 독점하게 되었다. 1987년 시즌 15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5, 36홈런, 99타점, 32도루를 기록하며 30-30 클럽에 가입했다.[10] 존슨은 이 클럽에 가입한 최초의 스위치 타자였으며, 팀 동료 대릴 스트로베리와 함께 같은 시즌에 30-30을 달성한 유일한 팀 동료가 되었다. 9월에 기록한 또 다른 만루 홈런으로 존슨의 시즌 홈런은 36개로 늘어났는데, 이는 1987년 이전 그의 통산 홈런 개수보다 단 4개 적은 수치였다. 그의 36홈런은 리퍼 콜린스의 53년 된 기록을 깨고, 스위치 타자 내셔널 리그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10]

7월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 할 레이니어, 8월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와이티 허조그로부터 코르크 배트 사용 혐의를 받았다.[11] 그의 배트 6개가 심판에 의해 압수되어 엑스레이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합법적인 것으로 밝혀졌다.[12]

1987년 존슨의 예상치 못한 활약에 리그 전체가 주목했고, 그는 내셔널 리그 MVP 투표에서 42점을 받았다. 그의 홈런과 타점은 팀 내에서 스트로베리에 이어 두 번째였으며, 그의 홈런은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 7번째로 많았다.

3. 5. 1988년 ~ 1989년: 이적 소문

1988년 존슨은 24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타율 .230으로 부진했다. 시즌 후반에 좋은 성적을 거둔 신인 그레그 제프리스를 3루수로 기용하고 존슨을 트레이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존슨과 제프리스가 3루수를 두고 경쟁하면서 1988~89년 오프 시즌은 이적 소문으로 가득 찼다.[14]

1989년에는 제프리스가 2루수로 이동하면서 3루수 자리를 지켰다. 월리 버크먼이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고, 제프리스는 1989년 메츠의 주전 2루수가 되었다. 존슨은 6번 혹은 7번 타순에서 활약하다가, 1988년 홈런과 장타율에서 내셔널 리그 1위를 기록한 대릴 스트로베리 앞으로 이동하여 3번 타순을 맡게 되었다.

존슨은 6월에 타율 0.340, 11홈런을 기록하며 생애 첫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14] 7월 9일, 메츠는 존슨과 3년 610만 달러 규모의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며, 이는 드와이트 구든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이었다.[15]

마이크 슈미트는 내셔널 리그 3루수로 선발되었지만, 경기 6주 전에 은퇴했다. 그 결과, 존슨이 생애 첫 MLB 올스타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16] 첫 올스타 타석에서 그는 내셔널 리그가 5–3으로 패한 경기에서 두 번째 득점을 올렸다.

1989년 8월 20일, 30번째 홈런을 기록한 존슨은 바비 본즈윌리 메이스와 함께 30-30 클럽(30홈런-30도루)의 유일한 다년차 멤버가 되었다. 2011년 기준으로 30-30 시즌을 여러 번 기록한 메이저 리그 역사상 유일한 다른 내야수는 이언 킨슬러, 알폰소 소리아노, 제프 배그웰 뿐이었다.[17]

존슨은 1989년 시즌을 36홈런, 41도루, 101타점, 104득점으로 마감하며, 통산 최고 기록이자 스위치 타자의 내셔널 리그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케빈 미첼의 커리어 시즌만이 존슨이 내셔널 리그에서 홈런과 장타 타이틀을 모두 획득하는 것을 막았다. 그는 내셔널 리그 MVP 투표에서 153점을 얻어 5위를 차지했다. 1989년 그의 출루율과 장타율은 모두 통산 최고 기록이었다.

3. 6. 1990년 ~ 1991년: 내셔널 리그 지도

1989년의 뛰어난 활약으로 존슨의 연봉은 80만 달러에서 160만 달러로 두 배 인상되었으나, 1988년과 비슷하게 1990년에도 좋은 연봉을 받으며 좋은 해를 보냈다. 존슨은 시즌 내내 꾸준히 평균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34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세 번째로 150경기 이상 출전했다. 타율 .244, 장타율 .434로 시즌을 마쳤지만, 90타점과 37개의 2루타를 기록했다. 시즌 마지막 두 달 동안 유격수 케빈 엘스터를 대신하여 출전했다. 메츠는 데이비 존슨 감독이 해임되면서 시즌을 부진하게 시작했지만, 새 감독 버드 해럴슨 아래에서 91승을 거두며 회복했다. 9월 초에는 1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존슨의 최고 경기는 1990년 6월 13일 리글리 필드에서 그랜드 슬램을 포함하여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5타점 경기였다. 그의 시즌은 약한 타격 쪽에서 .208만을 타구하면서 다시 한번 오른손 타격의 특성을 반영했다.

1990년 존슨의 부진으로 인해 트레이드 루머가 더욱 많아졌다. 대신, 메츠의 역대 홈런 및 타점 기록 보유자였던 대릴 스트로베리가 12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면서 메츠를 떠났다. 존슨은 메츠의 공격 리더가 되었고, 1991년에는 최고의 공격적인 선수로 활약하며 트리플 크라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존슨은 4월에는 부진했지만 5월 초부터 살아났다. 1991년 6월 18일 오른손잡이 그랜드 슬램을 치면서 타점들이 시즌 내내 이어졌고,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22경기에서 26타점을 기록했다. 63타점으로 존슨은 자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올스타 경기에 예비 선수로 선발되었다. 7월을 잘 마무리하고 거의 .700에 가까운 장타율로 28타점과 10홈런을 기록한 환상적인 9월이 오기 전에 느린 8월을 보냈다. 존슨은 2006년 6월 데이비드 라이트가 수상하기 전까지 이 상을 받은 마지막 메츠 선수였다.

시즌 말, 존슨은 내셔널 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했다. 38홈런은 내셔널 리그 양손 타자 기록을 경신했고, 117타점은 1999년까지 메츠 단일 시즌 최다 타점 기록이었다. 두 기록 모두 존슨의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1991년 10월 1일 30번째 도루를 기록하며 바비 본즈에 이어 세 시즌에서 30-30 클럽에 가입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해 6월 메츠 역대 홈런 2위로 데이브 킹맨을 넘어섰다. 존슨은 내셔널 리그 MVP 투표에서 112표를 얻어 5위를 기록했다. 메츠가 77승 84패로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더 많은 MVP 고려를 받았을 것이다.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메츠는 메이저 리그에서 경기당 득점이 5번째로 적었다. 존슨의 득점은 원맨쇼였으며, 38홈런은 팀 내 다음 두 최고 기록의 합보다 많았고, 타점은 팀 내 2위보다 40타점 이상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수비였는데, 선수 경력 최악인 31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9월 휴비 브룩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존슨은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메츠는 그를 남은 시즌 대부분 동안 외야수로 기용했다.[13]

3. 7. 1992년 ~ 1995년: 후반의 세월과 은퇴

1992년 시즌에 존슨은 에디 머레이, 바비 보니야, 빈스 콜먼, 브렛 세이버하겐 등 고액 연봉 선수들 사이에 있었지만, 타격에서 부진했다. 시즌 내내 우타석에서 기복이 심했던 그는 이 해에는 양쪽 타석 모두에서 부진했다. 4월에 3개의 홈런을 쳤지만, 5월에는 더욱 나빠졌다. 3개월 후, 그는 7개의 홈런, .223의 타율, .400 이하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6월 말의 홈런은 그의 시즌 마지막 홈런이 되었다. 7월 말 손목이 부러지기 전까지 한 달 더 홈런을 치지 못했다. 그는 골절 진단을 받기 전 몇 경기에서 심한 고통을 느끼며 뛰었고, 8월 초에 시즌이 끝났다.[19] 존슨은 2백만 달러 이상을 벌었지만, 장타율은 1991년보다 20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메츠는 메이저 리그에서 3번째로 높은 급료 지불 명부를 가졌지만, 72승 90패로 시즌을 마쳤다. 그는 그 해에 자신의 183번째 내셔널 리그 홈런을 쳐서 테드 시먼스의 양손 타자 리그 기록을 깼다.

1993년에 메츠는 103패를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최악의 팀이 되었다. 존슨의 타율은 5월이 되어서야 .200에 도달했고, 장타율은 겨우 일주일 동안 .400을 넘었다. 그는 6월에 3주를 놓쳤고, 7월 말에 시즌이 다시 일찍 끝났다. 시즌 종료 후 존슨은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1994년에 존슨은 콜로라도 로키스와 계약했다. 마일 하이 스타디움의 타자 친화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정 경기에서 더 많은 홈런을 쳤고, 총 10개를 기록했다. 혼잡한 좌익수 자리에서 그는 마이크 킹거리와 에릭 영과 시간을 나누었지만, 1994-95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으로 시즌이 끝난 8월에는 대부분 대타자였다. 그는 .211의 타율과 10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로키스는 1995년 시즌에 대한 그의 295만달러 옵션을 거부하고 40만달러의 바이아웃을 지불하며 그를 자유 계약 선수로 만들었다.[20]

1995년 4월 파업이 끝난 직후, 존슨은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다. 그는 제한된 출전 시간을 얻었고, 8월 중순에 그의 타율은 .115로 팀의 많은 투수들보다 낮았다. 그의 모든 생산력은 리글리 필드에서 나왔고, 원정 경기에서는 .100 미만의 타율과 2개의 2루타 이상을 기록했다. 9월에 약간의 상승으로 그의 전체 타율은 .195로 올라갔지만, 컵스로부터 새로운 계약을 얻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를 원하는 팀이 없자, 존슨은 35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3. 8. 1996년 ~ 현재: 은퇴 이후/복귀 시도/코치 경력

1996년 중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존슨을 신인 선수 수준의 마이너 리그 팀인 뷰트 코퍼 킹스의 코치진으로 임명하였다.[21]

1997년 2월, 존슨은 뉴욕 메츠와 함께 복귀를 시도했으나, 타율이 .129에 그치자 한 달 만에 시도를 포기하였다.[22] 그해 후반, 그는 메츠와 스카우트 계약을 맺었다.

2001년, 존슨은 메츠의 브루클린 사이클론스 마이너 리그 팀 타격 코치로 임명되었다. 뉴욕-펜 리그 공동 챔피언으로 브루클린이 선정된 후, 2002년에는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3년, 존슨은 세인트루시 메츠가 플로리다 주립 리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켄 오버크펠 감독 밑에서 타격 코치를 맡았다. 2004년에는 존슨과 오버크펠이 AA 빙햄턴 메츠로 승격되어 이스턴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05년, 두 사람은 AAA 노퍽 타이즈로 다시 승격되었고, 타이즈는 6시즌 만에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23] 그는 2006년에도 오버크펠 감독 아래에서 타이즈의 타격 코치를 맡았다.

2007년, 존슨은 메츠의 1루 코치를 맡았고,[24] 그해 후반에는 타격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25] 2011년에는 데이브 허젠스로 교체되었다.[26]

2011년, 50세의 존슨은 아들 글렌과 함께 독립 야구 리그인 캔-암 리그의 록랜드 볼더스에서 두 번의 마이너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27]

2013년 야구 시즌, 존슨은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AAA 타코마 레이니어스의 타격 코치로 임명되었다.[28] 2014년에는 새로운 코칭 스태프의 일원으로 매리너스 타격 코치로 합류했으나, 2015년 6월 에드가 마르티네스로 교체되었다.[29]

존슨은 2017년 싱글 A 다운 이스트 우드 덕스의 감독을 맡았고, 2018년에는 AAA 라운드 록 익스프레스의 타격 강사였다.[30] 2019년에는 AAA 내슈빌 사운즈의 타격 코치였다.[31]

2020년, 존슨은 멕시칸 리그의 토로스 데 티후아나 타격 코치로 합류했다.[32]

4. 주요 업적


  • 1984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뉴욕 메츠의 멤버였다.
  •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스위치 타자로서 통산 내셔널 리그 홈런 기록을 보유했다.
  •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스위치 타자로서 한 시즌 내셔널 리그 홈런 기록을 보유했다.
  • 30-30 클럽에 세 번(1987, 1989, 1991) 가입했다. 바비 본즈, 배리 본즈, 알폰소 소리아노만이 이 기록을 더 자주 달성했다.
  • 1987년부터 1991년까지 팀 동료 대릴 스트로베리에 이어 내셔널 리그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홈런을 기록했다.
  • 1989년1991년에 내셔널 리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팀 멤버였다.
  • 1989년1991년에 내셔널 리그 실버 슬러거 상(3루수)을 수상했다.
  • 1991년부터 2004년까지 메츠 역대 홈런 2위였다.
  •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메츠 역대 타점 2위였다.
  • 1991년에 한 시즌에 내셔널 리그 홈런과 타점 모두 1위를 기록한 유일한 스위치 타자가 되었다.
  • 1991년에 내셔널 리그 타점 1위를 기록한 유일한 메츠 선수였다.
  • 1991년에 내셔널 리그 타점 1위를 기록한 최초의 스위치 타자가 되었다. (랜스 버크먼이 2002년에 두 번째로 기록함)
  • 1989년 6월, 1991년 9월: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 수상. 2006년 6월 데이비드 라이트가 수상하기 전까지 이 상을 수상한 마지막 메츠 선수였다.
  • 은퇴 후 2년 이내에 존슨의 두 가지 주요 내셔널 리그 스위치 타자 홈런 기록이 깨졌다. 1996년 그의 한 시즌 기록은 41개의 홈런을 기록한 전 팀 동료 토드 헌들리에 의해 깨졌다. 1997년 그의 통산 기록은 플로리다 말린스에서의 챔피언십 시즌 중 210번째 내셔널 리그 홈런을 친 또 다른 전 팀 동료 바비 보니야에 의해 깨졌다.
  • 보니야는 2001년 249개의 NL 홈런으로 선수 경력을 마쳤지만, 현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치퍼 존스1999년에 달성한 NL 한 시즌 스위치 타자 홈런 기록(45개)과 통산 기록(452개)을 보유하고 있다.
  • 마이크 피아자2004년 메츠 역대 홈런 2위, 2005년 메츠 역대 타점 2위에서 존슨을 넘어섰다.
  • 2001년 존슨은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투표 후보에 올랐지만 득표하지 못했다.


주요 수상
홈런왕 1회: 1991년
타점왕 1회: 1991년
실버 슬러거상 2회: 1989년, 1991년
MLB 올스타전 선정 2회: 1989년, 1991년
월간 MVP 2회: 1989년 5월, 1991년 5월
30-30 클럽 3회: 1987년, 1989년, 1991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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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뉴스 Anticipated Trip Brings Much-Needed Win https://www.nytimes.[...] 200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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